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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드라마

[리뷰] 그녀가 죽었다 – SNS 이면의 진실, 당신은 그녀를 얼마나 알고 있었나요? 소개, 줄거리, 총평

by 훈빵 2025. 5. 3.

그녀가 죽었다

아름다운 타인의 삶,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집착

2024년 한국 영화계에 한 줄기 긴장감을 더한 스릴러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디지털 시대의 이중성과 인간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늘한 영화다. SNS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엿보며 일종의 위로와 위안을 받는 사람들. 이 영화는 그 무심한 관찰이 한 여자의 죽음을 계기로 어떻게 집착으로 발전하는지를 서사 중심에 둔다.

감독 김세휘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일상적인 디지털 소통의 풍경을 통해 사회적 단절과 외로움,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한 왜곡된 동경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또한 주연을 맡은 변요한신혜선의 강렬한 연기 호흡은 관객이 쉽게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겉으로는 조용한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질문이 숨어 있는 작품이다.


1. 관찰자의 시선, 탐정 아닌 스토커의 시점

《그녀가 죽었다》는 ‘도찰’이라는 독특한 키워드로 시작된다. 주인공 구정호(변요한 분)는 부동산 중개인이지만, 취미는 남몰래 타인의 일상을 도촬하고 관찰하는 일이다. 그는 SNS 속에서 행복해 보이는 여성 한소라(신혜선 분)의 삶을 몰래 훔쳐보며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죽은 채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급격히 뒤틀리기 시작한다.

관객은 이 영화에서 흔히 보는 명확한 탐정 역할의 주인공이 아닌, ‘스토커’의 시선에서 사건을 따라가게 된다. 정호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그녀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죽음의 단서를 스스로 추적하면서 점점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로 변해간다. 영화는 이 인물이 관찰자에서 탐색자, 그리고 마침내 침입자의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시점은 관객에게 일종의 도덕적 혼란을 준다. 우리는 정호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동시에 그가 밝혀내는 진실에 대한 궁금증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범인을 쫓는 스릴러에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관음증적 시선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2. SNS는 거울인가, 가면인가? – 허상으로 채워진 정체성

《그녀가 죽었다》는 SNS가 만들어내는 허위적 자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던진다. 죽은 한소라의 SNS 속 삶은 화려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실제 삶은 폭력과 고립, 불안정한 감정에 갇힌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SNS를 믿고 부러워하던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본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소라의 SNS는 완벽한 자아를 구성한 하나의 무대일 뿐이다. 그리고 그 무대를 믿고 의지해왔던 정호는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그가 쫓는 진실은 단순히 그녀의 죽음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던 진짜 ‘한소라’라는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영화는 SNS라는 플랫폼을 인간이 고립 속에서 만들어낸 ‘거짓된 안전지대’로 묘사한다.

또한 영화는 이를 단지 비판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허상을 만들어내는가? 왜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거짓된 이미지를 택하는가? 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혼란 속에서 관객 스스로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그녀가 죽었다》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 본성의 이면을 얼마나 노출시키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3. 섬세한 연출과 감정선 – 침묵 속에 드러나는 불안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소리 없는 긴장감’이다. 과도한 액션이나 음향 효과 없이, 정적인 장면 속에서도 숨 막히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관찰자 시점으로 인물을 따라다니고, 조명과 색감은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은근히 드러내며 분위기를 조성한다.

변요한은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있는 구정호 역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단순한 관찰자로 시작해, 점차 진실에 다가가며 감정이 요동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특히 말수가 적고 조용한 인물 특성상 표정과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가 영화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신혜선 또한 생전의 한소라와 그녀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이중적인 인물의 감정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소라의 SNS 이미지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세밀하게 표현해낸 그녀의 연기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큰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처럼 《그녀가 죽었다》는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관객에게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총평 – 현대 사회의 그림자를 드러낸 감성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는 단순한 추리 영화가 아니다. SNS라는 현대인의 일상적 플랫폼을 통해 인간의 외로움, 자기 연출, 그리고 관음증적 욕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치밀하게 엮어낸 감성 스릴러다. 감정적 깊이와 장르적 긴장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관객에게 단순한 사건의 해답이 아닌 ‘관계와 진실의 본질’을 질문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시선’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소비하고, 얼마나 쉽게 오해하며, 또 얼마나 무심하게 지나치는가. 영화는 그 시선을 통해 누군가의 외로움과 고통이 어떻게 놓치기 쉬운지 조용히 되묻는다.

감독 김세휘의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연출력, 배우들의 내면 연기, 촘촘히 짜인 각본이 어우러져, 《그녀가 죽었다》는 2024년 한국 영화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왜 죽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바로, 우리는 정말 타인을 알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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